플레이스테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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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3(PlayStation 3)은 소니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세 번째 게임기이다. 2006년 11월 일본과 미국에서 발매되었으며, 2007년 6월 한국에도 정식 발매됐다. PS3, 플스3, 플삼 등으로 불린다. 후속작은 플레이스테이션 4

발매국가[편집]

일본:2006년11월11일

미국/캐나다:2006년11월18일

호주/뉴질랜드:2007년3월7일

유럽연합:2007년3월23일

대한민국:2007년6월16일

개요[편집]

전작인 플레이스테이션 2의 뒤를 이어 출시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3세대 비디오 게임기로, 2005년 미국의 E3 게임쇼를 통해 프로토 타입이 처음 공개된 뒤, 2006년 11월 11일(일본)과 17일(미국)에 정식 출시됐다.

당시 본업인 가전사업의 위기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소니 회사의 명운을 건 기대작으로 개발되었으나 현실은 높은 제조 원가로 인해 팔면 팔 수록 적자를 보는 상황이 오면서 SCE(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소니의 가전사업을 담당하던 회사)는 물론이고 모회사인 소니 그룹까지 함께 부도의 위기에 빠질 뻔 하기도 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쿠타라기 켄도 PS3이 불러온 엄청난 영업 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떠나고 만다.

그러나 제조원가를 줄이기 위해 슬림 모델을 출시하는 등 과감한 결정, 그리고 은근히 쏠쏠했던 PSN(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서의 수익 등을 통해 2010년 이후에는 흑자로 전환에 성공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는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출시할 때 마다 그동안 게임용으로는 자주 쓰이지 않던 저장매체를 활용했는데, PS1이 CD롬을 사용했다면 PS2는 DVD를 사용했고 3세대는 블루레이 드라이브(BD)를 사용했다.

PS3은 시리즈 최초로 온라인 멀티 플레이(네트워크 플레이)를 게임사들에게 맡기지 않고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멀티 플레이 서비스를 정식으로 제공했다. 다만 PS4와는 달리 PS3은 PSN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했다.

판매가 종료된 2013년 말을 기준으로 PS3은 전 세계에 8천만 대 가량을 판매했다.

위기의 소니를 구원할 기기?[편집]

플레이스테이션3가 개발되던 당시 모회사인 소니 그룹은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다. 본업인 가전사업은 경쟁 회사들이 매섭게 치고 들어오며 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투자했던 미디어(컨텐츠) 사업 역시 부침이 심했다. 그나마 회사에 꾸준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게임 사업이었고, 자연스레 회사의 희망도 PS의 차기작으로 모아지게 된다. 본사는 쿠타라기 켄에게 소니 본사의 총괄 부사장직을 맡길 정도로 기대를 높혔다.

쿠타라기 켄은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PS3)이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라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된 슈퍼 컴퓨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동안의 게임기는 게임 개발자들이 만들면 유저는 그걸 즐기는 정도지만, PS3은 가정용 컴퓨터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은 물론 소프트웨어를 사용자가 직접 만들 수도 있고, 또 게임 이외의 것. 그러니까 가정에서 즐기는 종합 AV 미디어 플레이어로써 기능하기를 바라고 준비했다. 이 목적에 따르면 당시 차세대 저장 장치로 떠오르고 있던 블루레이(Blu-ray)를 지원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결정은 소니와 도시바, IBM이 합작해 만든 신형 CELL CPU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니는 PS3의 두뇌가 될 CELL 프로세서에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손해보며 파는 게임기[편집]

이왕 사는 게임기에 여러가지 기능까지 추가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반가운 이야기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PS3의 출시 초기 가격은 20GB 모델이 $499, 60GB 모델은 $599였는데, PS2의 출시 가격이 $299였던 것을 생각하면 놀랄 만큼 비싼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회사 입장에서 폭리를 취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초창기 PS3은 소니가 손해를 보면서 파는 기기였다. 이유는 바로 높은 생산 원가에 있는데, 고사양과 여러 기능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많은 부품을 사용하다 보니 생산 원가는 대당 무려 $800에 육박했다. 한 대에 800달러에 만들어서 200달러 이상씩 손해를 보고 팔았는데도 그렇게 판매된 가격이 500달러에 육박했던 것이다.

재미있는건 이런 '손해를 보며 파는 게임기'는 소니가 경쟁사들을 압도하던 시기의 전략이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콘솔 게임기는 대체로 회사가 손해를 보고 기계를 파는 대신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받는 라이센스 비용으로 매출을 충당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건 PS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PS1땐 세가의 세턴이 비싼 생산원가로 고통받는 동안 소니는 PS1을 저렴한 생산원가를 바탕으로 가격을 미친듯이 내리며 시장을 주도했고, PS2때도 MS의 엑스박스가 비싼 생산원가로 인해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내면서까지마소의 돈질 게임기를 싸게 파는 동안 오히려 PS2는 흑자를 보면서 게임기를 팔았었다. 그러나 PS3에선 실패한 경쟁자였던 세턴이나 엑스박스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엑스박스 360은 출시 1년만에 생산 원가를 크게 낮추며 원가보다 판매 가격이 더 높은 상황까지 도달했지만 PS3의 생산 원가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출시하고 3년이 훌쩍 지난 2008년에야 겨우 생산 비용을 절반인 400달러 대로 낮췄고, PS3의 비싼 생산 원가 문제는 201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해결된다.

PS3, 회사의 위기를 가져오다[편집]

가격은 꽤 비쌌지만 그래도 출시 초기까진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전작인 플레이스테이션 2는 게임 업계를 사실상 석권하며 제왕의 자리에 군림했던 전설적인 기계였고, 그 게임기의 후속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엄창나게 비싸진 가격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게이머들은 소매상에 줄을 섰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PS3때문에 총기 사고가 발생해 뉴스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비싼 가격에만 있던게 아니었다. PS3에는 블루레이 디스크를 지원했는데, 당시에 블루레이 자체가 초기 시장이다 보니 디스크 드라이브에 사용되는 부품의 대량 생산이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PS3을 아무리 많이 만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고, 출시 초기에 일본과 미국을 합쳐 초기 재고 물량이 채 50만 대에 불과한 상황까지 연결된다. PS2가 출시 첫 날에 무려 98만 대를 팔아치운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작은 물량이었고, 회사에는 그만큼 부담이 커졌다.

더 큰 문제는 당시 모회사인 소니의 상황이 웬만큼 돈질을 해도 괜찮은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경쟁사에 비해 여유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었다. 2000년대 후반은 엔화가 역대급 고평가를 받으며 안그래도 수출 위주의 일본 기업들이 큰 위기에 빠져있던 시기였는데, 희망을 걸었던 게임 사업 부문(SCE)이 돈을 벌기는 커녕 2006년 1분기에 600억 엔이 넘는 영업 적자를 시작으로 2007년 ~ 2009년에 4천억 엔이 넘는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안그래도 어려운 모회사의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드는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쿠타라기 켄은 역마진으로 인한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명예직으로 승진(사실상 좌천)되는 모양새로 회사를 떠나게 되고,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드는 법인인 SCE도 과감한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하위 게임 호환성 제거[편집]

플레이스테이션 3의 초창기 모델은 PS2와 마찬가지로 구작 게임들, 즉 PS2에서 출시되었던 게임들을 그대로 호환했다. PS3의 하드웨어 성능이 더 좋았기에 같은 게임기라도 그래픽이 약간 향상되는 효과도 있었으나... 문제는 역시 돈. 하위 기종의 호환성 확보를 위해 별도의 칩을 탑재했는데 이게 안그래도 비싼 PS3의 생산 원가를 더 높혀버리는 요인이 되었다.

PS3의 역마진으로 인한 엄청난 적자를 버티지 못한 소니는 결국 PS의 자랑이었던 하위 호환성 지원, 즉 PS2로 출시된 게임을 PS3에서도 그래도 즐길 수 있었던 호환 기능을 없애버리는 선택을 단행한다. 또한 메모리 카드 리더기와 같은 여러 기능들도 단종시키고 20GB 모델도 단종시켰는데, 대신 그만큼 가격도 낮춰서 PS3을 구매하려던 게이머들의 부담은 덜어줬다.

2009년엔 슬림 모델의 판매도 시작했다. 기존작에 비해 크기도 줄이고 가격도 낮춘 염가형 모델이었는데, 가격 인하 덕분에 꽤 비싼 게임기였던 PS3의 가격도 제법 낮아지며 판매량도 늘어났고, 영업적자 폭도 꾸준히 줄어들어 2010년 이후엔 흑자 전환에도 성공한다.

한국 시장 출시[편집]

PS3은 2006년 11월 일본과 미국 시장에 출시되었지만, 한국은 이듬해인 2007년 6월 16일에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국가별도 발매일이 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PS3은 유독 한국에서 가장 출시일이 늦은 편에 속한다. 심지어 싱가포르(2007년 3월)나 러시아(2007년 4월)보다도 늦었다.

한국에서의 최초 출시 가격은 80GB 모델이 518,000원이고 2007년 11월에 출시한 40GB 모델은 348,000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기 한국 원화의 환율이 미친듯이 급등하자 그 여파로 2008년엔 가격이 448,000원으로 인상됐고, 2009년 4월엔 다시 가격이 488,0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게임기같은 가전 기기는 출시 후에 서서히 가격이 떨어지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출시 이후에 오히려 가격이 계속 오르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PS3의 이런 가격 인상 흐름은 2009년 9월 슬림 버전이 발표된 뒤부터 서서히 내려가며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들었다.

사양[편집]

CPU 3.2GHz
GPU 500MHz
메모리 메인 메모리 256MB / 비디오 메모리 256MB
미디어 CD-ROM 24배속 / DVD-ROM 8배속 / 블루레이 2배속
출시일 2006년 11월(일본) / 2007년 6월(한국)

더 자세한 내용은 영문 미디어위키의 PS2 스펙 시트를 참고하자.

트리비아[편집]

  • 플레이스테이션1과 2의 정식 영문 이름은 PlayStation이었는데, PS3에서는 전부 대문자인 PLAYSTATION이었던 시절이 있다. 이에 대해 쿠타라기 켄은 PS1과 2가 미완의 작품이었다 PS3에 이르러 '완성형'이 되었기 때문... 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으나짤림 2009년 즈음부터 다시 PlayStation으로 변경된다.
  • PS3이 한국에 정식 출시되던 당시 용산에서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는데, 소비자보다 기자가 더 많았다는 루머가 돌 정도로분위기가 상당히 썰렁했다. 아무래도 당시 한국은 이미 온라인 구매 문화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었고, 굳이 용산까지 가서 현장 구매를 해야할 만큼 사은품도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착순 777에게 기념품과 추첨 선물을 주겠다고는 했으나 200여 대만 판매되었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그야말로 흥행 대실패. 당시 현장을 스케치한 뉴스 그러나 소니코리아는 이 굴욕(?)을 PS4 출시 행사에서 제대로 만회한다.
  • 소니가 LG전자에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LG전자는 플레이스테이션3이 사용하는 블루레이 재생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건 적이 있다. 기술 기업들의 특허 싸움이야 흔한 상황인데, 놀라운 건 이 당시에 LG전자가 유럽에서 PS3의 선적(출하)를 10일 이상 막아버리는 가처분 신청을 해버렸다! 당시 보도 결국 이 분쟁은 소니와 LG전자가 크로스 라이선싱을 맺는 쪽으로 마무리된다.
  • PS3의 두뇌를 담당한 CELL CPU는 일본과 미국 기업(IBM)이 합작해 야심차게 만든 프로젝트였으나, 정작 게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성능(정수 연산 능력)이 상당히 뒤쳐졌다. 원랜 GPU(그래픽 장치)까지 CELL칩을 넣을 예정이었으나 급히 NVIDIA에 GPU를 의뢰하고 만다. CELL 프로세서는 PS3용은 물론이고 일반 시장에도 판매되는 제품이었으나 PS3의 판매가 종료되면서 사실상 같이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