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Nintendo)는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회사 중 하나다. 1889년 교토에 화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시작했으며, 다양한 종류의 게임과 게임 기기를 생산하며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게임회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와 포켓몬스터는 게임으로 출발해 지금은 닌텐도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장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총 5,869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으며 매출 1조 556억 엔, 영업이익 1775억 엔을 기록하고 있다. 본사는 일본 교토시 미나미구에 있다.
목차
시작은 작은 화투 회사[편집]
일본에는 하나후다(花札) 라는 이름의 전통 카드놀이가 있는데, 이게 한국으로 넘어와서 바로 '화투'(직역하면 꽃싸움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 여담으로 이 화투를 이용해 즐기는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고스톱. 아무튼 닌텐도는 교토에 살던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공예가는 그 화투를 제작하는 작은 회사로 닌텐도를 시작했다. 이게 1889년의 일이었다. 1902년에는 일본에서는 최초로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만드는 등 꾸준히 성장했다.
1949년엔 회사의 이름을 닌텐도 카루타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꾼다. '카루타'도 일본의 대표적인 카드놀이 중 하나로, 당시까지도 닌텐도는 플레잉 카드 제작에 주력했던 것이다.
카드회사의 한계를 뛰어 넘다[편집]
1956년, 창업주인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손자이자 회사를 물려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카드 회사인 US플레잉카드를 방문하고 충격을 받는다. 세계 최대의 나라에서 플레잉 카드를 만드는 대표적인 회사였으니 굉장히 큰 기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방문해보니 의외로 상당히 작은 사무실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닌텐도의 주업이었던 플레잉 카드의 시장 규모에 한계를 느끼고 업종 변화를 시도한다.
1963년에 회사의 이름을 닌텐도 주식회사로 바꾼 뒤 히로시는 사업 범위를 크게 넓혀나가는데, 운수업이나 러브호텔(...) 진출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금의 햇반 비슷한 쌀을 활용한 인스턴트 식품 사업에도 진출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엔 본업인 플레잉 카드 판매까지 감소하면서 주당 900엔이 넘던 회사의 주가가 60엔까지떡락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의 반전은 우연히 시작되었는데, 1966년 당시 닌텐도의 공장 설비보수 기술자였던 [요코이 군페이]라는 사람이 일과 시간 중간 중간에 땡땡이취미 삼아 만든 장난감이 사장의 눈에 띄며 단숨에 연구개발직의 리더로 승진한다. 그리고 이 사람이 처음으로 만든게 바로 '울트라 핸드'라는 이름의 집게 비슷한 장난감이었는데, 이게 대박을 터트리며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군림했다.
본격적인 전자 회사의 길에 접어들다[편집]
울트라 핸드의 성공 이후 여러 종류의 장난감들을 생산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 분야에서는 일본 안에서만 Tomy, 반다이같은 그 분야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그러던 닌텐도가 선택한 길은 바로 비디오 게임 사업이었다. 1977년 닌텐도는 미쓰비시와 손잡고 '컬러 TV 게임'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를 출시하는데, 이게 여러 시리즈로 출시되며 300만 대 가량 팔리며 제법 흥행에 성공한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낙하산으로 입사한 직원이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인데, 처음엔 컬러TV게임 이라는 이름의 콘솔게임기 케이스를 디자인하는 일로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닌텐도는 1980년에 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 & 워치'를 발매했다. 이것도 앞서 쉬는시간에 장난감을 만들었던 요코이 군페이가 이번에는 기차를 타는 동안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계산기의 버튼을 만지작거리던 승객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출시했는데, 처음엔 회사원을 타겟으로 출시했지만 당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 일본에서만 1200만 대, 글로벌 시장에서 3천만 대를 합쳐 무려 4천만 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훗날 닌텐도의 히트작이 되는 '휴대용 게임기' 시리즈의 성공을 예고했다.
미국에서의 실패? 그리고 반전[편집]
해외에서 닌텐도의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1980년엔 미국에 닌텐도 오브 아메키라를 설립한 뒤 '레이더 스코프'라는 이름의 게임기를 수출하기 시작했는데, 이 게임은 훗날 업계의 레전드가 되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한 첫 번째 게임이었지만 일본 국내에선 그럭저럭 팔린 게임이 미국에서는 장사가 굉장히 안돼서 고생이 굉장히 심했다.
적자를 버티다 못한 미국 지사에서 SOS가 날라오자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요코이 군페이에게 10만 달러를 주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여기에 미야모토 시게루도 다시 참여해 동키콩 이라는 이름의 게임을 만든다. 고릴라와 목수, 소녀 사이에서 발생한 삼각 관계라는 이 주제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엄청난 인기를 끈다. 레이더 스코프용 게임기 역시 동키콩용 게임기로 바꿔 망하기 직전이었던 미국 지사를 흑자로 돌려놓고, 이에 힘입어 닌텐도는 1982년엔 실적이 전년의 세 배로 뛰며 무려 660억 엔의 매출에 227억 엔의 엄청난 기록을 거둔다.
여담으로 이 동키콩은 훗날 포켓몬스터와 함께 닌텐도의 상징적인 캐릭터가 되는 슈퍼 마리오가 등장하는 첫 작품이다.
패미컴으로 세계 게임시장을 휩쓸다[편집]
1983년 닌텐도는 새로운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패밀리 컴퓨터, 약칭 패미컴을 출시한다. 당시 게임시장은 저질 게임이 난립하며 공멸해버린 이른바 아타리 쇼크 사태로 인해 큰 위기에 빠져있었는데, 닌텐도는 오직 게임에만 집중하고 이외의 부가 기능을 과감히 잘라낸 뒤 게임성이 괜찮은 게임들만 라이센스를 주는 방식으로 패미컴을 출시한다.
일본에서는 패미컴, 일본 밖의 해외에서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 패미컴은 출시 초기엔 동키콩의 패미컴 이식 버전이, 나중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훗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게임기도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며 글로벌 시장에 6천만 대를 판매했다.
1989년엔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 보이를, 1990년엔 슈퍼 패미컴을 출시해 두 제품 모두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닌텐도는 1980년 ~ 90년 대 초까지 세계 게임시장을 장악하는 대표주자로 성장한다. 슈퍼 패미컴의 판매량이 다른 비디오 게임기를 압도하자 게임 개발사들은 앞다퉈 닌텐도 플랫폼에 자사의 게임을 출시하려고 했다.
승자의 오만, 추락의 시작[편집]
슈퍼 패미컴에 사용되는 저장 매체는 흔히 '게임팩'이라고 부르는 마스크 ROM이었는데, 이 매체는 만드는데 생산 원가도 꽤 비쌌고 무엇보다 생산에 작게는 며칠에서 많게는 한 달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닌텐도는 이 마크스ROM이 제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게임 개발사에게 선금과 함께 판매 물량 '보증'을 요구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타이틀이 잘 팔리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엄청나게 많은 적자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 내 판매상들도 닌텐도가 장악하면서 게임 회사들은 닌텐도의 '갑질'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소니와의 파트너쉽이 깨지면서 큰 변수가 발생한다. 당시 소니와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을 본체로 활용하고 CD 플레이어 기능을 추가한 제품을 만드려고 했었는데, 거의 완성 직전까지 갔던 두 회사의 프로젝트가 사실상 닌텐도측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로 깨져버리게 된다. 문제는 닌텐도도 업계의 거물이었지만 그 당시 소니는 지금의 삼성전자+애플에 버금가는 세계구급 기업이었다는 데에 있고, 자존심이 박박 긁힌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를 만들면서 강력한 대항마로 거듭난다.
초창기 플레이스테이션은 닌텐도가 독주하던 게임시장을 제대로 뚫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의 예상이었으나 닌텐도의 갑질에 가까운 판매 관행에 지쳐버린 서드파티가 잇다라 PS 진영에 합류하고, 여기에 마스크ROM 대신에 생산 원가가 저렴했던 CD를 사용해 게임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게임팩의 반 값 수준으로 낮춰버리고, 소니 역시 적자를 감수하면서 기기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려가며 경쟁한 결과 후발 주자였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닌텐도가 출시한 닌텐도 64를 누르고 게임 시장 1위를 차지한다. 1997년 이후 글로벌 비디오 게임 시장의 주도권은 닌텐도가 아니라 소니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다만 닌텐도 64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큼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시대에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팩을 사용했음에도 슈퍼 마리오와 같은 닌텐도의 강력한 자체제작 게임들, 그리고 여전히 닌텐도를 지지했던 서드 파티들이 개발한 타이틀이 대호평을 받으며 글로벌 3천만 대 이상을 판매했으며, 여전히 회사의 실적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슈퍼 패미컴 시절에서는 압도적 1위를 달리던 게임회사가 이제는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리고, 심지어 내려다봤던 세가의 새턴에도 밀리면서 2 ~ 3위권까지 추락한 것이 뼈아픈 결과였다.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쓰다[편집]
경쟁에서 밀리긴 했으나 닌텐도는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1989년 출시했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는 닌텐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였는데, 90년대 중반에 게임보이의 판매량과 매출이 슬슬 떨어져갈때 쯤 지금은 전설 그 자체가 된 포켓몬스터가 출시된다. 초창기 포켓몬은 그렇게 인기있는 게임이 아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인기를 얻으면서 3천만 장 이상을 판매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닌텐도도 1998년 게임 보이 컬러 모델을 출시하고, 2001년엔 게임 보이 어드밴스 모델을 출시하며 계속 줄어들고 있던 회사의 수익을 어떻게든 지탱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이런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눈독을 들인 소니가 이번엔 PSP를 출시하려던 무렵, 닌텐도는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NDS를 출시한다. 마이크와 터치 펜을 내장하고 터치 스크린 기능을 갖춘 두 개의 화면을 탑재한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는 당시로써는 상당히 특별한 조작감으로 눈길을 끌었고, 여기에 마리오 카트 DS와 같은 듀얼 스크린이라는 특징을 활용한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닌텐도는 NDS를 출시하면서 그동안 게임기를 멀리했던 소비자들을 향해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다수 출시한다. 예를 들어 게임기로 18종에 이르는 개들을 키울 수 있는 닌텐독스나 게임기로 두뇌를 훈련한다! 라는 이름으로 콘솔게임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에서도 무려 50만 장 이상을 판매한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은 게임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까지 끌어들일 만큼 인기를 얻는다.
2006년엔 체감형 게임기인 닌텐도 Wii를 출시한다. 사실상 실패한 기기였던 게임큐브의 하위 호환 제품으로 출시된 Wii는 '체감형 게임기라는 컨셉트로 키보드나 마우스(PC) 또는 게임패드와 같은 고정형 컨트롤러가 아닌 모션 센서가 탑재된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걸 이용해 손맛이 느껴지는 낚시를 즐기거나 피트니스를 즐기는 등 전통적인 의미의 비디오 게임이 아닌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1억 대 이상을 판매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가장 큰 경쟁자였던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 상당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반면 닌텐도는 Wii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닌텐도 64와 게임큐브 시절 잃어버린 게임 시장 점유율을 되찾으며 7세대 게임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2010년엔 소니와의 오랜 싸움에 '승리'했다고 선언할 정도로 입지 회복에 성공한다.
다시 찾아온 위기[편집]
한 때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에서도 온갖 금융회사와 공기업을 재치고 도요타의 뒤를 이어 시가총액 2위에 올라갈 만큼 대단한 기세를 자랑하던 닌텐도는 2010년 이후 빠르게 추락했다. 우선 2000년대 후반 이후에 엔화의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해외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던 닌텐도가 환율로 인해 이익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당시 경쟁사였던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가전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에 빠졌다.
무엇보다 닌텐도의 주력 상품이었던 NDS(휴대용 게임기)와 Wii(가정용 게임기)의 매출이 모두 줄어든 탓이 컸다. 게임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까지 끌어들여 새로운 시장을 열어보려는 계획은 좋았고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이 쪽은 성장의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전통적인 골수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고화질 그래픽을 탑재한 타이틀들은 꾸준히 소니의 PS3이나 PSP로 출시되고 있었고 특히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선 PS3이 초반의 실패를 딛고 서서히 반등에 나서는 동안 Wii나 후속작인 Wii U는 좀처럼 판매량이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시장이 빠르게 옮겨간 것도 영향을 끼쳤다. 아이폰 출시 이후 세계 핸드폰 시장은 풀터치 스크린과 모바일 운영체제를 갖춘 스마트폰 시장으로 빠르게 옮겨갔는데,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던 닌텐도가 그 영향의 직격탄을 맞아버린 것이다. 당시 스마트폰 게임들은 닌텐도의 그것만큼 게임 라인업이 출중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게임기를 살 필요'도 없었고 가격도 저렴했던 스마트폰 시장으로 게이머들이 대거 이동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닌텐도의 경쟁자는 소니가 아니라 애플과 구글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결국 2012년 닌텐도는 상장 이후 5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영업 적자라는 위기에 봉착한다. 물론 워낙에 쌓아둔 돈이 많았던지라 38년 간 적자를 봐도 망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2013년, 2014년에 연이어 적자를 기록하며 3년 연속 적자라는 불명예의 기록도 남겼다.
오뚝이 닌텐도, 다시 반등에 성공하다[편집]
그러나 닌텐도에는 여전히 회사를 떠받치던 두 영웅이 있었다. 바로 슈퍼 마리오와 포켓몬스터가 그 주인공이었다. 닌텐도는 게임 기기를 만드는 전자 회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 개발 회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닌텐도는 풍부하지는 않아도 매력적인 게임 타이틀들을 가지고 잇었고, 이걸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활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2016년 7월에 출시한 포켓몬 GO는 닌텐도가 가진 IP의 힘이 여전함을 증명했다. 실제 게임 개발은 닌텐도가 아니라 나이언틱이라는 미국 회사가 맡아서 했지만, 아무튼 이 포켓몬 GO는 그냥 잘 팔린 정도가 아니라 사회 현상으로 뉴스에도 보도될 만큼 세계를 강타했다. 게임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게 아니라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다는 것이 상당히 크게 어필했다.
여기에 2017년 출시한 닌텐도 스위치의 발매는 패미컴 - NDS/Wii에 이어 제 3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동안 비디오 게임 기기는 휴대용이 아니면 데스크톱 PC처럼 집에 두고 쓰는 가정용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닌텐도 스위치는 평소에는 집에서 두고 쓰다 밖에서는 본체에 내장된 6.2인치 디스플레이로 밖에서도 게임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즉 집에서도 밖에서도 모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게임기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성능도 콘솔용 게임기인 전작 Wii U를 능가할 만큼 뛰어나다.
특히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출시된 타이틀들이 연이어 호평을 받으며 높은 퀄리티의 게임에 목말랐던 게이머들에게 크게 어필했는데,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신작은 나란히 올해의 게임 후보에 올랐고 포멧몬스터 신작 역시 1천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 때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인기를 끈 닌텐도 스위치는 2018년에도 꾸준한 흥행을 유지하며 누적 판매량 3,227만 대를 돌파했다. # 그동안 닌텐도를 외면하던 퍼스트 파티들 역시 닌텐도 스위치의 판매량 호조에 주목하고 잇다라 닌텐도 스위치용 타이틀을 출시할 예정이라 2019년 이후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