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PlayStaion) 시리즈는 일본 소니가 만든 게임기 및 브랜드다. 데스크톱 PC처럼 주로 집에 두고 쓰는 가정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와 휴대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기기(PSP)로 나뉘지만, 포터블 기기는 사실상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가정용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이 중심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플레이스테이션 4를 기준으로 경쟁 브랜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이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로, 국적과 인종을 뛰어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게임기 중 하나다.
개발 비화
아이러니하게도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를 만든건 예나 지금이나 게임 사업에서 소니의 가장 큰 경쟁사인 닌텐도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1980년대, 소니의 실력있는 엔지니어였던 쿠다라기 켄은 닌텐도의 패미컴을 본 뒤 꽂혀버린 나머지 후속작인 슈퍼 패미컴에 들어갈 PCM 사운드 칩을 직접 설계하고, 닌텐도를 찾아가 납품을 제안한다. 이어 쿠다라기 켄은 슈퍼 패미컴에 CD가 탑재된 모델도 제안하는데, 그냥 제안한 정도가 아니라 교토에 있는 닌텐도 본사를 직접 찾아가 귀찮을 정도로 제안했다고. 결국 쿠다라기 켄에게 항복(?)한 닌텐도가 플레이스테이션 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이 닌텐도 + 소니의 합작 프로젝트는 49,800엔이라는 가격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두고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계약이 파기되고 만다. 아마 닌텐도가 장악하고 있는 게임팩이 아닌 소니가 주도하는 CD라는 매체로 옮길 경우 닌텐도의 시장 주도권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런 결정은 워크맨에 힘입어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회사로 리즈시절을 달리던 소니에게 매우 충격적인 이혼 통보였고, 뒷통수를 얻어맞고제대로 열이 받은(...) 소니측은 '우리도 게임기 만들자!'고 계획을 틀어서 아에 게임기를 만들어버린다. 이 때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쿠다라기 켄은 소니의 사장을 포함해 중역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대로 물러나면 소니는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하는 식으로 제대로 안그래도 열받은 소니 경영진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서 자신이 원하던 대로 독립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다.
플레이스테이션 1
힘든 시작
당시 소니의 사장이었던 오가 노리오의 지지에 힘입어 1993년 정식으로 PS-X 프로젝트가 출범한 뒤 1993년 초에는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를 전담할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라는 사내 벤처 회사까지 설립한다. 그리고 초기 65명의 개발자들이 모여 1994년 12월 3일, 역사적인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 1)이 정식 출시된다.
사실 개발 과정에서 게임회사들은 플레이스테이션에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당시 세계구급 인기를 끌고 있었던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을 버리고 굳이 새로운 플랫폼에 발을 담글 이유도 없었고, 소니가 과거에 게임 사업에 잠깐 발을 담궜다가 철수했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그러나 세가가 당시로썬 화려하기 짝이 없던 3D 그래픽을 탑재한 버추얼 파이터를 발표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3D 게임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열렸는데, 그 3D 기술을 제대로 구현할 기기는 당시로썬 소니가 막 개발하고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이 가장 적합해 보였던 것이다. 여기엔 당시 세가와 닌텐도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던 것도 도움이 됐다.
세가나 남코와 같은 네임드급 개발사들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빠르게 합류하자 시장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특히 그때까진 닌텐도 기계로 발매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RPG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최신작이자 3D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 7을 플레이스테이션 용으로 개발, 출시하기로 결정하면서 닌텐도와 소니의 첫 번째 가정용 게임기 시장 대결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승리로 마감된다.
여담으로, 플레이스테이션 1이라는 이름은 훗날 출시되는 2, 3, 4와 비교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플레이스테이션이고, 넘버링은 따로 붙지 않는다.
플레이스테이션 2
전설에 남을 가정용 게임기
전작인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소니는 2000년 3월 출시되는 차기작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주 저장 매체로 CD 대신에 DVD를 사용한 것. 물론 CD 역시 지원했지만, 650MB 정도의 저장 용량을 지원하던 CD에 비해 4.7GB나 되는 저장 용량을 지원하는 DVD를 주 저장 장치로 지원한 효과는 분명했다. PS2로 출시되는 타이틀은 게임의 볼륨(폭)이 훨씬 더 넓어진데다, 나는 게임기가 아니라 DVD 플레이를 사는거야!라는 훌륭한 핑곗거리(?)도 선물했다.
특히 PS2는 전작인 PS1에서 출시된 게임들과 호환성을 가진 것도 호평을 받은 결정이었다. 패미컴 -> 슈퍼 패미컴 시절에는 패미컴으로 나온 게임은 슈퍼 패미컴으로는 즐길 수 없었던 것처럼 당시로써는 하위 호환이 일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PS1로 구매한 게임은 새로 구매할 것 없이 성능이 더 좋아진 PS2에서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게이머로써는 상당히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폭 넓은 게임 라인업이었다. 당시 엑스박스를 비롯한 경쟁작들은 훨씬 더 뛰어난 성능과 더 저렴한 가격, 손해까지 감수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어떻게든 PS2의 아성을 흔들려 노력했지만 PS1에서 처음 승리를 거둔 뒤 주요 게임 개발사들은 가장 먼저 자사의 신작을 PS2로 출시했고, 이게 게이머들이 PS2를 구매하게 만들었으며, 그걸 본 개발사들은 다시 PS2로 게임을 만들면서 흥행의 선순환이 갖춰진 플레이스테이션2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게임기의 가장 큰 덕목은 '내가 원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느냐'이고, PS2는 그 기준에 가장 적합한 게임기였다. 더 비싼 가격(물론 소니도 MS의 엑스박스 가격 인하를 그냥 놔두고 있지는 않고 같이 가격을 따라서 내렸다)과 덜 뛰어난 게임 성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PS2는 플레이스테이션3이 나온 2006년 이후에도 단종되지 않고 계속 판매되다 2012년 말에야 단종됐다.
플레이스테이션 3
오만의 최후, 플레이스테이션의 위기
PS2의 차기작이 출시되던 무렵 모회사인 소니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소니는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전자산업계의 황제로 군림하며, 지금의 삼성전자 + 애플을 모두 합친 것 같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소니는 90년대 후반 회사의 방향을 전자산업이 아니라 문화컨텐츠 등 다양한 사업으로 범위를 확대하는데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사이에 LG전자나 삼성전자같은 경쟁사들이 소니가 한 눈을 팔고 있던 시기를 놓치지 않았던 것에 있다. 소니가 자만하며 본업(전자산업)의 투자를 등한시하는 동안 경쟁사가 무럭무럭 자라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소니는 이미 전자 산업의 선두 주자가 아니었다. 소니의 주가가 폭락하자 일본의 주식시장(닛케이지수)도 동반 하락해 '소니 쇼크'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소니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소니 문서를 참고.
아무튼 그렇게 회사가 어려워질 무렵 그나마 소니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매출을 벌어다 주는 건 그나마 게임사업, 즉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던 쿠타라기 켄은 회사의 구원 투수가 되어 본사 임원까지 승진하는 등 한껏 기대를 받는 상태로 플레이스테이션3를 새롭게 개발했는데..
문제는 이게 잘 안됐다. PS3은 고성능을 지원하기 위해 '셀 칩'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칩을 개발했는데, 이게 수억 달러의 개발비를 쏟아붓고도 계획했던 완성도가 나오지 못했다. 결국 출시도 지연되고,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비싼 부품을 쓰면서 가격은 더 올라갔다. 처음 소니는 PS3의 가격으로 6만 엔대를 제시했다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5만 엔이 약간 안되는 가격으로 가격을 내렸다.
무엇보다 PS3의 출시가 계획보다 늦어진 게 문제였다. PS2와의 경쟁에서 처참히 패배하며 칼을 갈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차기작 XBOX360을 PS3보다 먼저 출시해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대로 시장을 선점했다. MS는 좀 더 저렴한 원가로 예전처럼 손해보지 않고 기기를 팔았고, 타이틀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특히 일본 게임 업체들에게 엄청난 러브콜을 보내 적극적으로 타이틀을 유치하며 플레이스테이션 시장을 위협했다.
2006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PS3이 출시됐지만 성과는 썩 좋지 못했다. 초반 게임 라인업이 부족했다 보니 게이머들이 굳이 잘 돌아가고 있는 PS2를 놔두고 PS3으로 교체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PS3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더 큰 문제는 게이머(소비자)들은 PS3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소니의 입장에선 PS3의 생산 원가는 판매 가격보다 더 비쌌다는 것이었다. 대당 200불 이상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엑스박스가 초창기 손해를 보며 기기를 팔았던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엑스박스는 윈도우즈라는 확실한 돈줄이 있었던 반면 소니는 본진(!)인 전자산업이 먼저 박살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하드웨어 판매에서 발생한 손해는 소프트웨어 판매 수익으로 만회해야 했는데, PS3가 안팔리니 소프트웨어도 안팔리고 적자는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비싼 생산단가 문제는 출시 후 3년이 훌쩍 지난 2010년이 넘어서야 겨우 해결된다.
결국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쿠타라기 켄을 명예직으로 승진시키는 형태로 사실상 회사에서 쫓아내고(실제로는 본인이 사표를 씀), 회사를 갈아엎는 등의 구조조정을 거쳤다. 모회사인 소니 역시 사실상 전자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본질을 바꿔나가는 수준의 대규모 변화까지 시도할 정도였으니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던 기기였다.
다만 출시 초기의 부정적인 반응과는 달리 2010년 초반 이후에는 꽤 잘 팔렸다. PSN을 통한 손쉬운 멀티 플레이를 지원했으며, 최신작인 PS3의 성능에 걸맞는 화려한 그래픽을 갖춘 신작들이 계속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비싼 생산 원가 -> 비싼 소비자 가격 -> 판매량 부진'으로 이어졌던 초기의 실수가 뼈아팠던 라인업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4
다시 시작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두 번째 전성기
PS3이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PS3의 부진은 안그래도 어려웠던 회사를 '부도라는 거대한 폭포 앞에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어려움에 빠트렸으니 후속작인 PS4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우선 비싼 출시 가격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던 전작과는 달리 PS4는 초기 출시 가격을 일본 기준 3만 9,800엔으로 낮춰 시작했다. 5만 엔에 가까웠던 PS3의 창렬무지막지한 가격에 비교하면 꽤 가격을 낮춰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멀티미디어 지원 기능까지 미뤘을 만큼 핵심이 되는 게임 기능에만 집중하고,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2013년 11월 첫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4는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우선 기기의 최초 출시를 본진인 일본이 아닌, 세계 최대의 게임 시장인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도 2013년 12월에 출시해 일본 정식 출시일인 2014년 2월보다 빠르게 출시했고, 초기 물량 배정 역시 미국에 우선적으로 할당했다.
그리고 전작에서는 무료였던 멀티 플레이가 유료로 전환됐다. 이제 PSN의 플러스 구독 서비스(PS Plus라는 이름의 월정액 유료 서비스를 이용해야만 멀티 플레이가 가능하다. 다만 PS Plus 가입자들에게 매월 유료 타이틀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유인책도 함께 마련해서 생각보다 게이머들의 유료화에 대한 저항은 작았고, 소니 입장에서도 안정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을 기준으로 PS4는 9천만 대가 넘게 팔리며 시리즈 최고의 전성기였던 PS2를 능가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준수한 성능, 합리적인 가격, 무엇보다 폭넓은 게임 라인업 덕분에 사실상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통채로 잡아먹으며 2019년 현재도 판매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